스마트폰은 알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지 (부제: 디지털 복지와 감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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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복지와 감시 사회
내 주머니 속 스마트폰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압니다. 어젯밤 누구를 만났는지, 점심값으로 얼마를 썼는지, 심지어 내 심박수가 언제 빨라졌는지까지도요. 편리하죠. 그런데 이 '편리함'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가 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디지털 복지 국가(Digital Welfare State)'**라는 꽤 그럴싸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정부는 말합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요. 서류 더미 속에서 신음하던 공무원들을 구하고, 도움이 절실한 이웃을 핀셋처럼 찾아내겠다는 약속. 반대할 명분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매끈한 디지털 표면 아래에는 **'가난을 감시하는 눈'**이 시퍼렇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 우리는 종종 잊고 삽니다.
"당신은 가난하니까, 잠재적 범죄자입니다"
너무 과격한 표현 같나요? 네덜란드의 'SyRI(시리)'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아이폰 시리(Siri)가 아닙니다. 네덜란드 정부가 야심 차게 도입했던 '복지 부정수급 탐지 시스템'의 이름입니다. 이 알고리즘은 물 소비량, 전화 사용 내역 같은 온갖 사생활 데이터를 섞어 시민들에게 점수를 매겼습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유독 가난한 동네와 이민자 거주지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는 겁니다. 부유한 동네의 탈세는 잡지 않으면서, 빈민가의 빵 한 조각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셈이죠. 결국 법원은 "기술적 효율성이 인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며 이 시스템의 전원을 꺼버렸습니다. 통쾌한 승리였지만, 한편으론 씁쓸합니다. 법원이 막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알고리즘 판사' 앞에서 내 결백을 증명해야 했을 테니까요.
데이터가 된 사람들: '송파 세 모녀'와 한국의 현실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아픈 기억,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습니다. 그 비극 이후 한국 정부도 위기 가구 발굴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단전, 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등 30개가 넘는 정보를 긁어모아 위기 신호를 찾습니다. 의도는 선합니다.
하지만 묻고 싶습니다. 가난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발가벗겨져야 할까요? 도움을 주기 위해 데이터를 모으는 것과,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감시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버지니아 유뱅크스(Virginia Eubanks)의 말마따나, 우리는 현대판 **'디지털 빈민원(Digital Poorhouse)'**을 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벽돌 대신 데이터로 쌓아 올린, 탈출구 없는 감옥 말입니다.
기술, 차가운 감시인가 따뜻한 등불인가
스웨덴의 작은 도시 트렐레보리의 사례는 희망적입니다. 로봇이 단순 행정 업무를 처리해 준 덕분에, 사회복지사들은 서류가 아닌 '사람'의 눈을 들여다볼 시간을 얻었습니다. 기술은 이렇게 쓰여야 합니다. 사람을 감시하는 CCTV가 아니라, 사람의 온기를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죠.
AI는 분명 강력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 칼자루를 쥔 건 결국 사람입니다. 효율성이라는 명목하에 약자들의 인권을 '비용'으로 치부하지 않는지,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해야 합니다. 편리함에 취해 우리가 내어준 정보가, 언젠가 우리 이웃을 찌르는 칼이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